진료일기 #02 — 눈떨림과 불안, 그리고 간음허
진료노트 #02
눈떨림과 불안, 그리고 간음허
"눈에서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아요."
그렇게 말하는 환자의 표정은 지쳐 보였다. 60대 초반 여성. 좌측 눈꺼풀이 떨리기 시작한 지 3개월. 하루 종일 자려고 눕기 전까지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. 안과에 가서 검사를 받았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.
"눈은 초점이 안 맞는 게 아니고, 그냥 떨리는 거예요."
통증은 없었다. 단순히 떨림. 하지만 그 떨림이 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를 지치게 했다. 책을 많이 봐야 하는 상황인데 집중이 잘 안 된다고 했다.
이 환자에게는 눈 증상만 있는 게 아니었다. 1달 반 전부터 불안이 시작됐다. 계기가 있었다. 손녀가 머리에 심각한 증상이 생겨서 "언제 죽을지 모른다" 는 이야기를 들었다.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, 집 앞에서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. 한 달 반 전 일이었다.
"혼자 있으면 무섭고, 운전도 못하겠어요."
잠을 잘 못 잤다. 가슴 두근거림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더 심해졌다. 식사는 하는데도 체중이 계속 빠졌다. 한열왕래가 간헐적으로 있었다. 피부에 잡티가 확 올라왔다. 대변은 하루 3-4번, 식후면 꼭 화장실을 찾게 됐다.
동의보감, 이 병리를 어떻게 읽나
동의보감의 눈질환 관련 장(外形篇)에서는 이렇게 말한다.
"간이 허하면 눈이 아프고 찬 눈물이 나오며..."
여기서 말하는 간허(肝虛) 는 오늘날 말로 간의 영양 물질, 즉 '간음(肝陰)'이 부족한 상태를 말한다. 간은 눈을 주관한다(肝開竅於目). 간음이 부족하면 눈이 제대로 영양을 받지 못하고, 그 결과 떨림이나 건조감, 피로감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.
동의보감 내경편은 불안과 불면에 대해서도 설명한다.
"익영탕(益榮湯)은 사려과도(思慮過度)로 심혈(心血)을 소모하여 생긴 정충증(怔忡症)과 정신이 얼떨떨한 것을 치료한다."
사려과도 — 너무 많은 생각과 걱정이 심장의 혈(血)을 소모시킨다는 뜻이다. 손녀의 병,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두 가지 외상 사건은 그야말로 '사려과도' 그 자체였다.
간음허, 그리고 내풍
한의학에서는 오래된 스트레스와 정신적 충격이 간의 음(陰)을 소모시킨다고 본다. 간음이 부족해지면 여러 증상이 나타난다.
첫째, 허열(虛熱)이 발생한다. 음이 부족하면 양이 상대적으로 성해진다. 이 허열이 가슴을 뜨겁게 달구면서 불안, 불면, 가슴 두근거림을 유발한다. 한열왕래가 있는 것도 이 허열 때문이다.
둘째, 내풍(內風)이 생긴다. 동의보감 잡병편의 말을 빌리자면 경련이 생기는 것은 기울(氣鬱)로 인한 것이고 기가 잘 돌면 경련이 멎는다. 눈꺼풀의 떨림은 이 '내풍'의 가장 가벼운 형태로 볼 수 있다. 심해지면 근육 경련이나 떨림으로 이어질 수 있다.
셋째, 비(脾)를 극(克)한다. 간목(肝木)이 비(脾)를 억누르면 소화 기능이 약해진다. 이 환자의 식후 대변 증가와 체중 감소가 여기에 해당한다.
치료의 원칙: 표와 본
치료는 두 축으로 접근했다.
하나는 식풍(熄風) — 증상을 직접 가라앉히는 것. 눈떨림과 불안 동요는 간풍 내동의 표현이므로, 이를 직접 제어하는 약재나 치료가 필요하다. 증상이 활발할 때는 이 표(標) 치료가 우선된다.
다른 하나는 자음(滋陰) — 근본을 보충하는 것. 간의 음(陰)을 보충해야 허열이 잡히고 내풍이 재발하지 않는다. 수(水)를 보충해서 목(木)을 기르는 원리다. 동의보감의 표현을 빌리면 '장수(壯水)로 양기를 억누르고 음을 자양한다'는 치료 원칙이 여기에 해당한다.
삶의 맥락
이 환자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점은 그녀가 겪은 두 가지 사건이다. 손녀의 건강 위기와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. 이 두 사건은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흔드는 외상이었다.
한의학에서는 이런 칠정(七情)의 상(傷)이 가장 먼저 간(肝)을 손상시킨다고 본다. 간은 감정의 흐름을 주관하는 장기이기 때문이다. 간음이 소모되면 감정의 파도는 더 쉽게 일고, 더 오래 가라앉지 않는다.
치료는 약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. 환자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, 그 이야기를 의학적 맥락에서 이해해주는 과정 자체가 치료의 일부다.
이 글은 실제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임상 에세이입니다. 환자의 개인 정보는 보호되었으며, 처방명과 구체적인 치료 내역은 익명화되었습니다. 개인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는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.